원하던 자리까지 왔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

쉰두 살 대기업 임원이 산사까지 가져온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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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도착했는데도, 마음 한구석은 비어 있었습니다.

가을비가 내리던 금요일이었다.

오후 차담을 신청한 여자는 쉰두 살이었다. 단정한 검은 재킷을 입고 있었고, 차방에 들어와서도 휴대전화를 한동안 손에서 놓지 못했다.

스님이 찻잔을 그녀 앞으로 밀었다.

“요즘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니?”

여자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제가 바라던 걸 다 이뤘는데요.”

“그랬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공허한지 모르겠어요.”

스님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바라던 걸 다 이뤘다는 건 어떤 뜻이니?”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기 시작했다.

대기업에 입사했고, 아이를 낳은 뒤에도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승진에서 몇 번 밀렸고, 자신보다 늦게 들어온 동료가 먼저 올라가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래서 더 오래 일했고, 더 많은 성과를 만들었다.

결국 임원이 되었다.

그날 사무실에는 축하 꽃이 가득했고, 연락이 끊겼던 사람들에게서도 메시지가 왔다.

“그날은 행복했니?”

“네.”

대답은 빨랐다. 하지만 잠시 뒤 그녀가 덧붙였다.

“아니요. 정확히는 안도했던 것 같아요.”

“무엇 때문에?”

“드디어 제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까?”

여자의 손이 찻잔에서 멈췄다.

“제가 이렇게 살아온 방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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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멈추는 일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녀는 회사 이야기를 더 했다.

회의실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자신의 표정을 먼저 살피는 위치가 되었다. 수백 명의 성과를 평가하고, 승진과 조직개편에 의견을 내고, 누군가의 새로운 기회를 결정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부럽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그 말을 들으면 어떠니?”

“처음에는 좋았죠.”

“지금은?”

여자는 한참 있다 말했다.

“부담스러워요.”

“왜?”

“제가 행복해야 할 것 같아서요.”

스님은 고개를 들었다.

“누구에게?”

“회사에서도 그렇고… 가족에게도 요.”

그녀는 조금 웃었다.

“무엇보다 저 자신에게 요. 여기까지 왔는데 행복하지 않다고 하면, 지금까지 제가 잘못 살아온 것 같잖아요.”

스님은 곧바로 반박하지 않았다.

잠시 뒤 하나만 물었다.

“지금의 자리를 잃으면 넌 어떤 사람이 되는 것 같니?”

여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한동안 빗소리만 들렸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것 같아요.”

그 말을 하고 나서 그녀 자신이 놀란 듯 스님을 바라봤다.

스님은 더 묻지 않았다.

· · ·

그날 저녁, 경전을 펼치다

저녁 프로그램이 끝난 뒤, 스님과 그녀는 『법화경』 「서품」의 첫 장면을 함께 읽었다.

경전은 왕사성 기사굴산에 부처님이 머물고 있었고, 그 자리에 많은 비구들과 보살들, 여러 존재와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고 전한다. 각자의 이름과 지위, 역할도 하나씩 소개된다.

여자가 그 대목을 한동안 바라보다 말했다.

“여기 사람도 정말 많네요.”

“응.”

“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고요.”

“그렇지.”

“그럼 여기서는 누가 더 중요한 사람이었어요?”

스님이 되물었다.

“경전에서 네 눈에 먼저 들어온 사람은 누구니?”

여자는 다시 책을 내려다봤다.

“잘 모르겠어요.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요.”

스님이 잠시 후 말했다.

“경전이 회사의 직함을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란다.”

여자가 스님을 바라봤다.

“그럼 왜 이걸 읽는 거예요?”

“네가 사람을 만날 때 무엇을 먼저 보는지 한번 물어볼 수 있으니까.”

여자는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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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은 오늘의 직장생활에 대한 정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내가 사람을 무엇으로 먼저 바라보고 있는지는 묻게 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사람을 보면 직급부터 봐요.”

“그래?”

“평가해야 하니까요. 실적도 보고, 가능성도 보고요.”

잠시 멈췄다가 그녀가 말했다.

“저 자신도 그렇게 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사원, 대리, 과장, 팀장, 임원. 계속 다음 이름을 얻어야 제가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처럼요.”

스님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 이름들이 모두 사라지면?”

여자는 웃지 못했다.

“그게 무서운 것 같아요.”

그날 스님이 더 이상 해답을 말해주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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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달려온 길이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 길이 정말 내가 원하는 곳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다시 물을 수 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비가 그쳤다.

스님과 그녀는 산길을 천천히 걸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걷다가 여자가 먼저 말했다.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래.”

“일도 좋아해요. 제가 잘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가 제 직함으로만 저를 설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스님은 걷던 속도를 조금 늦췄다.

“그러면 직함 말고 너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여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뒤 하나씩 말했다.

“친구들과 밥 먹는 걸 좋아하고요.”

“응.”

“혼자 여행 가는 것도 좋아했어요. 예전에는 책도 많이 읽었고요.”

그녀가 웃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이야기는 아무도 안 물어봤네요. 저도 저한테 안 물어봤고요.”

스님은 짧게 말했다.

“그 질문을 다시 해봐도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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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춰 서야, 뒤에 놓고 온 마음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녀가 산을 내려가는 날, 회사는 그대로였다.

월요일이면 다시 회의가 있었고, 결정해야 할 일도 많았다. 임원이라는 직함도 사라지지 않았다.

산사에 며칠 머물렀다고 공허함의 이유를 모두 이해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차에 오르기 전 그녀가 말했다.

“스님.”

“응.”

“제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니죠?”

스님이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네가 걸어온 시간을 내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자의 눈에 잠깐 힘이 풀렸다.

그리고 스님이 덧붙였다.

“다만 앞으로도 같은 방향으로 걸어갈지는 네가 다시 물어볼 수 있겠지.”

그녀는 한참 뒤 고개를 끄덕였다.

· · ·

오늘의 산사일기

오늘 한 사람이 산을 내려갔다.

세상에서 많은 것을 이룬 사람이었다.

처음 그녀의 직업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마음 한편에서 생각했다. 저 정도 성공한 사람에게도 이런 고민이 있을까.

그 생각이 부끄러웠다.

고통은 연봉이나 직함에 맞춰 크기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성공은 허무하다”라고 말하는 것도 옳지 않을 것이다. 그 자리는 그녀가 오랜 시간 노력하고 견뎌 얻은 결과였으니까.

나는 오늘 그녀에게 내려놓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무엇을 붙잡고 있는지를 함께 물었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사람을 만날 때 마음속에 작은 명찰을 붙일 때가 있다.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 성공한 사람. 힘든 사람. 수행을 오래 한 사람. 아직 모르는 사람.

그 명찰은 사람을 빨리 이해하게 해주는 것 같지만, 어쩌면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늘 다시 『법화경』 첫 장면을 펼쳐본다.

많은 이름이 적혀 있다.

하지만 그 이름 하나만으로 어느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알 수는 없다.

나도 내일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명찰보다 먼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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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누군가에게 답을 주기 전에, 내가 그 사람을 어떤 이름으로 미리 판단했는지 먼저 돌아본다.

· · ·

오늘 당신에게 남은 질문

직업과 성과와 역할을 잠시 내려놓는다면,
나는 나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 · ·

함께 읽은 경전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 1 「서품(序品) 제1」

구마라집 한역 『묘법연화경』의 첫머리는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기사굴산에 머무셨다(一時,佛住王舍城耆闍崛山中)”고 시작하며, 이어 많은 비구와 보살 등 다양한 대중이 함께한 법회의 모습을 전합니다.

이 글은 그 장면에서 출발해 오늘의 삶에서 직함·평가·역할과 ‘나’의 관계를 다시 묻습니다. 『법화경』 「서품」이 현대의 회사 직급이나 커리어 정체성을 직접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위 연결은 「지혜와 쉼」의 현대적 성찰입니다.

원전 확인: CBETA, T09, no. 262, 『妙法蓮華經』卷1〈序品第一〉
https://cbetaonline.dila.edu.tw/T0262

경전과 창작 안내

이 글에 등장하는 여성과 상담 내용은 오늘날 여러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성공·성과·정체성의 고민을 바탕으로 구성한 창작·재구성 서사입니다. 특정 실제 인물이나 실제 상담 사례를 재현한 것이 아닙니다. 경전에 직접 기록된 내용과 현대적 해석은 구분하여 작성했습니다.

지혜와 쉼 · 세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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