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살 여성이 산사까지 가지고 온 한마디

누군가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두려울 때, 나는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지 묻게 된다.
비가 오는 토요일이었다.
오후 차담을 신청한 여자는 서른다섯 살이었다.
우산을 접어 처마 밑에 세워두고 방으로 들어왔지만, 손에는 휴대전화를 꼭 쥐고 있었다.
“전화가 올 것 같아요.”
“받아도 괜찮아.”
“아니요. 안 받을 거예요.”
여자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잠시 뒤 화면이 다시 밝아졌다.
엄마
그녀는 보지 않은 척했다.
스님도 묻지 않았다.
찻잔에 김이 조금씩 사라질 즈음, 결국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결혼하래요.”
“누가?”
“엄마요.”
“넌?”
여자는 잠시 멈췄다.
“모르겠어요.”
“하기 싫은 건 아니고?”
“그것도 모르겠어요.”
스님은 더 묻지 않았다.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한 듯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남자친구는 있어요. 오래 만났어요. 결혼 얘기도 하고 있고요.”
스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엄마가 자꾸 날짜 잡으라고 하면 갑자기 하기 싫어져요.”
“왜?”
“제가 결혼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스님은 잠시 찻잔을 바라보다 물었다.
“그전에는?”
“뭐가요?”
“엄마가 원하는 대로 선택한 적이 많았니?”
여자가 짧게 웃었다.
“거의요.”

한 통의 전화가 두려운 것은, 그 안에 오래된 기대가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학도 그랬다.
전공도 그랬다.
첫 직장을 고를 때도 그랬다.
한때 준비했던 시험도 그랬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을 때는 결국 포기했다.
“엄마는 항상 제가 잘되라고 그러셨어요.”
“그랬구나.”
“엄마가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내가 나쁘다고 했니?”
여자가 스님을 바라봤다.
“아니요.”
“그런데 왜 그 말을 먼저 했을까?”
여자의 입술이 잠시 굳었다.
“엄마 욕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요.”
“엄마와 다른 선택을 하는 건 엄마를 욕하는 걸까?”
“……아니겠죠.”
“그런데?”
여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밖에서는 처마 끝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도 받지 않았다.
한참 뒤 그녀가 먼저 말했다.
“스님.”
“응.”
“저는 왜 아직도 엄마가 실망하는 게 이렇게 무서울까요?”
스님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엄마가 실망하면 넌 어떤 사람이 되는 것 같니?”
여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쁜 딸이요.”
“누가 그렇게 정했니?”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스님도 더 묻지 않았다.
· · ·
그날 저녁, 작은 법당에서 『법화경』 「서품」의 첫 장면을 함께 읽었다.
부처님이 깊은 삼매에 든 뒤 미간의 흰 털에서 빛을 내어 동쪽의 많은 세계를 비추는 장면이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미륵보살도 혼자 의미를 단정하지 않았다. 대중의 의문을 헤아리고 문수보살에게 물었다.
“무슨 인연으로 이런 상서가 나타난 것입니까?”
『법화경』 「서품」에서 미륵이 문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자신의 질문이 시작될 때가 있다.
법당을 나오는 길에 여자가 물었다.
“스님.”
“응.”
“미륵보살도 몰랐던 거예요?”
“적어도 그 장면에서는 자신이 본 것의 의미를 묻고 있지.”
“보살인데도요?”
스님이 웃었다.
“모르면 물으면 안 되니?”
여자도 조금 웃었다.
“저는 서른다섯인데 아직도 제가 결혼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면 아직 모르는 거겠지.”
“그게 답이에요?”
“아니.”
“그럼요?”
스님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답을 모른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 제대로 물어볼 수 있겠지.”
그날 스님이 경전에 대해 길게 설명한 것은 그 정도였다.
· · ·
다음 날 아침 비가 그쳤다.
스님과 그녀는 산길을 조금 걸었다. 젖은 흙냄새가 났다.
한동안 말없이 걷다가 그녀가 먼저 말했다.
“어제 생각해 봤어요.”
“제가 엄마 말을 따르는 이유가 엄마를 사랑해서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엄마한테 미움받는 게 무서워서였던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둘 다일 수도 있지.”
“둘 다요?”
“사람 마음이 하나뿐인 경우가 더 드물지 않을까?”
여자는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사랑해서 따랐던 것.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
실망시키기 싫었던 것.
그리고 미움받기 싫었던 것.
그 마음들이 반드시 하나만 진짜일 필요는 없었다.
“그럼 엄마 말을 안 들어도 되는 거예요?”
“내가 결정해 줄까?”
여자가 피식 웃었다.
“아니요.”
“그럼 누가 결정해야 할까?”
“제가요.”
스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걸어도, 결국 내가 가야 할 길은 내가 선택한다.
그녀가 산을 내려가는 날까지 결혼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남자친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도 정하지 못했다.
엄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산사에 왔다고 인생의 문제가 며칠 만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점심 무렵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엄마
그녀는 화면을 한동안 바라봤다. 그리고 이번에는 전화를 받았다.
“엄마. 나 집에 가서 이야기 좀 하자.”
“아니. 결혼 안 한다는 얘기는 아니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먼저 얘기하고 싶어.”
통화를 끝낸 그녀가 한동안 휴대전화를 바라봤다.
스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여자도 설명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녀가 가방에 휴대전화를 넣었다.
오늘의 산사일기
밤이 되었다. 오늘 그녀가 떠났다.
나는 처음부터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네 삶을 살아라.
참 좋은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그녀에게 “네 삶을 살아라”라고 결정해 주는 순간, 그것 역시 다른 사람이 그녀의 삶에 답을 써주는 일이 될 수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 역시 딸이 잘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 마음이 진심이라고 해서 그 선택이 언제나 딸의 선택과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나 역시 조심해야 한다. 좋은 말을 한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결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우리는 『법화경』에서 미륵이 묻는 장면을 함께 읽었다.
경전이 부모의 기대에서 벗어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결혼을 하라거나 하지 말라고 말하는 장면도 아니다.
다만 오늘 나는 그 질문 앞에서 한 가지를 다시 생각했다.
모른다는 것을 너무 빨리 답으로 덮어버리지 않는 것.
그녀는 처음 차방에 들어와 계속 말했다.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그것이 답답한 말처럼 들렸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들린다.
모르기 때문에 물을 수 있고, 묻기 때문에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볼 수도 있다.
나 역시 사람을 만나면 답을 건네기 전에 먼저 들어야겠다. 그 사람이 아직 자기 질문을 끝내지 않았을지도 모르므로.
오늘 당신에게 남은 질문
내가 ‘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들 가운데,
정말 내가 선택한 것은 얼마나 될까요?
함께 읽은 경전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 1 「서품(序品) 제1」
구마라집 한역 『묘법연화경』의 첫 품에서는 부처님이 삼매에 든 뒤 미간의 백호에서 빛을 내어 여러 세계를 비추고, 이를 본 미륵보살이 대중의 의문을 헤아려 문수사리보살에게 그 까닭을 묻는다.
원전 참고: CBETA, T09, no. 262, 《妙法蓮華經》卷1〈序品第一〉.
이 글의 현대적 연결에 대하여
『법화경』 「서품」이 부모의 기대, 결혼의 자기 결정권 또는 현대 여성의 독립을 직접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글은 미륵이 이해되지 않는 현상을 성급하게 단정하지 않고 질문하는 장면에서 출발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 타인의 기대와 자신의 마음을 구분하기 위해 먼저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본 「지혜와 쉼」의 현대적 성찰입니다.
경전과 창작 안내
이 글에 등장하는 여성과 상담 내용은 오늘날 여러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가족의 기대와 자기 선택의 갈등을 바탕으로 구성한 창작·재구성 서사입니다.
특정 실제 인물이나 실제 상담 사례를 재현한 것이 아닙니다. 경전에 직접 기록된 내용과 현대적 이야기의 해석은 구분하여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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