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왜 이렇게 불안할까요

사장이고, 가정주부이고, 엄마이고, 내조하는 아내이고, 딸이자 며느리인 마흔다섯 살 여성의 이야기

쉬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쉬고 있으면,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 · ·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차담을 신청한 여자는 마흔다섯 살이었습니다.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고, 중학생과 고등학생 두 아이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산사에 온 것은 금요일 저녁이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 오후가 되도록 휴대전화를 손에서 완전히 놓은 적이 없었습니다.

차방에 들어와서도 휴대전화 화면이 한 번 켜졌습니다.

“가게 때문에 마음이 쓰이세요?”

“네. 오늘 제가 없잖아요.”

“가게에는 아무도 안 계세요?”

“직원들이 있어요. 오래 일한 분들이라 잘하긴 하는데요.”

그녀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래도 제가 사장이니까요.”

스님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여자는 아침부터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일어나자마자 가게 단체대화방을 확인했고, 점심시간에는 매출을 확인했습니다. 직원에게 음식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집에도 전화를 했습니다. 큰아이에게 동생이 밥을 먹었는지 물었고, 남편에게는 냉장고에 반찬이 어디 있는지 알려줬습니다.

저녁에는 친정어머니에게도 전화해야 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무릎이 아프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다음 주에는 시아버지 병원 진료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모시고 가기로 했지만 검사 시간을 확인하고 필요한 서류를 챙긴 것은 그녀였습니다.

“여기까지 와서도 이러고 있네요.”

“많이 맡고 계시네요.”

그 말에 여자는 잠시 조용해졌습니다.

“그런데 다 제 일이기는 해요.”

“어떤 의미에서요?”

“가게는 제가 시작했으니까 제가 책임져야 하고요. 아이들은 엄마니까 챙겨야죠. 남편도 밖에서 힘들게 일하는데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야 하고요.”

잠시 생각하더니 그녀는 말을 이었습니다.

“친정 부모님께는 딸이고, 시댁에서는 며느리잖아요.”

그녀에게는 여러 개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사장. 가정주부. 엄마. 아내. 딸. 며느리.

그리고 이상하게도 어느 이름 앞에서나 같은 문장이 따라붙었습니다.

내가 해야 한다.

· · ·

“제가 안 하면 누가 해요?”

그녀의 하루는 새벽 네 시에 시작되었습니다.

집 안은 아직 조용했습니다. 가족들이 자는 동안 아이들이 먹을 아침을 준비하고, 밥솥과 반찬을 확인하고, 세탁기를 돌렸습니다. 아이들이 일어났을 때 바로 챙길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준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이미 가게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전날 장사를 마치며 적어둔 메모를 확인하고, 오늘 필요한 채소와 고기, 부족한 식재료를 떠올렸습니다.

준비를 마치면 가게로 바로 가지 않았습니다. 먼저 시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날 쓸 식재료를 직접 보고 골랐습니다. 가격을 확인하고, 상태를 살피고, 필요한 양을 계산했습니다. 어떤 날은 생각했던 가격보다 재료값이 올라 다른 품목을 다시 비교해야 했습니다.

장을 보는 동안에도 가게 생각은 계속되었습니다. 오늘 예약은 몇 팀인지, 준비해야 할 음식은 얼마나 되는지, 직원들의 출근에는 문제가 없는지 머릿속으로 하나씩 맞춰봤습니다.

그렇게 식재료를 싣고 나서야 가게로 향했습니다. 가게에 도착해 식재료를 정리하고 냉장고를 확인하고 주방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직원들이 출근하면 그날 해야 할 일을 나누고 예약과 주문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손님들에게 그녀의 하루는 가게 문이 열리는 순간 시작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하루는 이미 몇 시간 전부터 시작되어 있었습니다.

image.png손님들이 가게 문을 열기 전, 그녀의 하루는 이미 몇 시간째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가게 문을 닫는다고 하루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다시 엄마가 되고 가정주부가 되었습니다.

남편이 힘든 날에는 이야기를 들어줬습니다. 남편에게 중요한 일정이 있으면 필요한 것을 먼저 챙겼습니다.

친정에서 연락이 오면 딸이 되었고, 시댁에 일이 생기면 며느리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부터 생각했습니다.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죠. 그런데 다들 이렇게 살지 않나요?”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럼 선생님은 언제 쉬세요?”

“가게 쉬는 날이요.”

“오늘처럼요?”

여자가 멈칫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웃음이 흘렀습니다.

“그러네요. 오늘 쉬고 있는데도 계속 일을 하고 있네요.”

“몸이 여기 있는 것과 쉬는 것은 조금 다른가 봐요.”

여자는 아무 말 없이 휴대전화를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정말 안 할 수가 없어요.”

“어떤 일은 정말 그러겠지요. 아이도 챙겨야 하고, 가게도 돌아가야 하고, 부모님이 아프시면 살펴야 하니까요.”

여자의 표정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자신의 삶을 이해받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네.”

“꼭 해야 하는 일과, 선생님이 해야 마음이 놓이는 일은 항상 같은가요?”

여자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 · ·

그날 저녁 그녀는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가 문득 그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꼭 해야 하는 일. 내가 해야 마음이 놓이는 일.

처음에는 둘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가게 직원에게 맡겨도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이제 스스로 해볼 수 있는 일도 있었습니다.

반면 정말 자신이 해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사장으로서 결정해야 하는 일이 있었고, 부모님의 건강처럼 외면할 수 없는 일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모든 일이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해야 할 일.

그리고 그 앞에는 늘 같은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자신이었습니다.

· · ·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나는 언제 있나요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다시 차방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휴대전화를 가방 안에 넣었습니다.

“어제는 좀 쉬셨어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계속 생각은 했어요.”

“어떤 생각을요?”

“제가 꼭 해야 하는 일하고, 제가 해야 마음이 편한 일을요.”

“생각보다 두 번째가 많더라고요.”

“큰아이는 자기 일을 자기가 할 수 있는데도 제가 자꾸 확인해요. 남편도 알아서 할 수 있는데 미리 챙기고요.”

“왜 그러시는 것 같으세요?”

“그게 가족을 챙기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좋은 엄마이고 좋은 아내라면 그래야 하는 것 같았어요.”

“딸이나 며느리일 때도 비슷하세요?”

여자는 잠시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네. 가게에서도 그래요. 직원들에게 맡겨놓고도 결국 제가 확인해요.”

“사장도 아니고, 엄마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고, 딸도 며느리도 아닌 선생님은 언제 있으세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시간이요.”

여자는 한참 생각했습니다.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런 시간이 생기면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좀 불안해요.”

“어떤 불안인가요?”

“게으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무엇을 잘못하셨는데요?”

“아무것도 안 했잖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잘못인가요?”

그 질문 앞에서 그녀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 · ·

그날, 법화경의 다음 장면을 펼치다

그날 저녁 스님과 그녀는 『묘법연화경』 「서품」의 한 장면을 함께 읽었습니다.

앞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사굴산의 법회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경전은 부처님께서 보살들을 위해 ‘무량의’라는 이름의 대승경을 설한 뒤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佛說此經已,結加趺坐,入於無量義處三昧,身心不動。

불설차경이, 결가부좌, 입어무량의처삼매, 신심부동.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신 뒤 결가부좌하고 무량의처삼매에 들어,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신심부동.”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적혀 있네요.”

“부처님도 쉬신 거예요?”

“그렇게 읽으면 조심해야 해요. 여기서 말하는 삼매를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휴식과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어요.”

경전은 부처님이 삼매에 든 뒤 꽃이 내리고 세계가 진동하며, 모인 대중이 한마음으로 부처님을 바라보았다고 이어서 기록합니다. 이 장면은 『법화경』의 서사를 여는 중요한 징조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장면을 보니까 어떤 생각이 드세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움직이지 않는 장면이 있다는 게 이상해요.”

“왜 이상하세요?”

“저는 하나 끝나면 바로 다음 것을 생각하거든요.”

그녀가 손가락으로 책상 가장자리를 천천히 쓸었습니다.

“가게 일을 하면서 집 생각하고, 집에서는 부모님 생각하고, 부모님 일을 끝내면 아이들 생각하고요. 가만히 있는 시간이 없네요.”

스님은 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경전도 그녀에게 가게 문을 닫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엄마의 역할을 그만두라고 하지도 않았고, 부모님을 돌보지 말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오래된 경전 속에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장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장면 앞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나는 왜 항상 다음 일을 준비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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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하는 일과, 내가 붙잡고 있는 일

산을 내려가기 전날 그녀는 종이에 자신의 일을 적어봤습니다.

가게. 아이들. 남편. 집안일.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

처음에는 목록이 길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옆에 질문을 하나씩 붙였습니다.

정말 내가 해야 하는 일인가.

어떤 일에는 ‘네’라고 적었습니다.

어떤 일에는 한참 생각하다가 ‘함께’라고 적었습니다.

남편과 나눌 수 있는 일. 아이들이 직접 해볼 수 있는 일. 직원에게 맡겨볼 수 있는 일. 형제자매와 의논해야 할 일.

그리고 몇몇 일에는 처음으로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늘 하지 않아도 됨.

“별것도 아닌데 어렵네요.”

“무엇이 어려우세요?”

“안 하는 게요. 사실 일을 줄이는 것보다, 안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게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러면 그것부터 천천히 살펴보셔도 되겠네요.”

· · ·

가족에게 일을 나눈다는 것

가게로 돌아온 뒤에도 그녀의 삶이 갑자기 가벼워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월요일이면 다시 가게 문을 열어야 했고, 아이들은 여전히 엄마를 찾았고, 부모님의 건강도 신경 써야 했습니다.

그래도 아주 작은 시도는 해볼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큰아이가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그녀가 불렀습니다.

“오늘 설거지 좀 해줄래?”

“제가요?”

“응. 엄마 오늘 좀 피곤해서.”

아이가 고무장갑을 끼는 모습을 보는데 마음 한편이 불편했습니다. ‘내가 하면 더 빨리 끝나는데.’ 컵을 놓는 위치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물기가 남은 접시도 보였습니다.

몇 번이나 대신하려다가 참았습니다.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큰일이 생긴 것도 아니었습니다.

며칠 뒤에는 시아버지 병원 진료를 앞두고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아버님 병원은 당신이 한번 확인해줄래요?”

“당신이 확인한 거 아니었어?”

순간 익숙한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뻔했습니다. ‘됐어. 내가 할게.’ 하지만 잠깐 멈췄습니다.

“이번에는 당신이 해줘요. 아버님 진료니까.”

남편은 휴대전화를 꺼냈습니다.

자신이 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을 덜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고, 좋은 엄마가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여전히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그녀는 아직 답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그 질문이 생기자마자 다시 일을 가져오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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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내려놓는 것이 답은 아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여전히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새벽 네 시 기상도 그대로였습니다. 집안의 아침 준비를 마치고 시장에서 식재료를 고른 뒤 가게로 이동해 영업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식당은 실제로 운영해야 했고, 아이들은 여전히 돌봄이 필요했고, 나이 든 부모님의 건강도 현실이었습니다.

이런 삶을 두고 단순히 “마음을 내려놓으면 된다”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녀의 피로 가운데 일부는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해야 할 일이 많은 삶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산사에서 얻은 질문도 모든 일을 버리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씩 나누어보게 했습니다.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하는 일.

다른 사람이 해도 되는 일.

오늘 하지 않아도 되는 일.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내가 붙잡고 있는 일.

그 경계를 한 번에 정확히 나눌 수는 없었습니다. 어떤 날은 맡겼다가 다시 자신이 했고, 어떤 날은 너무 피곤해서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족이 기대만큼 움직여주지 않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예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모든 일이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 곧바로 ‘내가 해야 한다’고 결론 내리기 전에 잠깐 묻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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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역할도 없는 시간

어느 일요일 오후였습니다.

가게는 쉬는 날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각자 약속이 있었고, 남편도 외출했습니다. 친정에도, 시댁에도 특별한 일이 없었습니다.

집 안에 그녀 혼자 남았습니다.

이런 시간이 생기면 예전에는 청소를 했습니다. 냉장고를 정리하거나 장부를 보거나 다음 주 가게 일을 준비했습니다.

그날도 처음에는 청소기를 꺼내려 했습니다. 그러다 손을 멈췄습니다.

해야 할 청소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거실 소파에 앉았습니다.

처음 몇 분은 불편했습니다. 텔레비전을 켰다가 끄고,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내려놓았습니다.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문득 산사에서 스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사장도 아니고, 엄마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고, 딸도 며느리도 아닌 선생님은 언제 있으세요?”

그때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오후에도 여전히 정확한 답은 없었습니다.

다만 처음으로 아무 역할도 하지 않은 채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사장으로서도 아니고, 엄마로서도 아니고, 아내로서도, 딸이나 며느리로서도 아닌 채로.

그녀 자신도 처음에는 그 시간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굳이 무엇을 위한 시간이어야 하는지도 아직 알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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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산사일기

오늘은 며칠 전 다녀간 한 사람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분에게는 많은 이름이 있었습니다. 사장, 엄마, 아내, 딸, 며느리.

처음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그분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다른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이름을 붙일 때 그 이름과 함께 해야 할 일도 붙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엄마니까. 아내니까. 아들이니까. 며느리니까. 사장이니까. 책임 있는 사람이니까.

그 말 가운데에는 실제로 필요한 책임도 있습니다. 가족에게 해야 할 몫도 있고,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한 책임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책임이 반드시 한 사람에게만 돌아가야 하는지는 또 다른 질문일 것입니다.

저도 오늘 절에서 제 일을 돌아봤습니다. 스님이니까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 가운데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는 것은 없었는지,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상대가 스스로 해볼 기회까지 제가 먼저 가져간 것은 없었는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법화경』의 그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경을 설하신 뒤 무량의처삼매에 들어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삼매를 오늘 우리가 말하는 휴식과 같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움직이지 않는 장면 앞에서 한 가지 질문을 얻었습니다.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반드시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때로는 움직임을 멈춘 짧은 순간에야, 내가 무엇 때문에 움직이고 있었는지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 답을 경전이 대신 내려주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결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의 오래된 장면이 오늘의 삶을 비추었고, 그 빛 아래에서 한 사람이 자신의 일을 하나씩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면 충분한 날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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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신에게 남은 질문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많은 일 가운데,
정말 내가 해야 하는 일과 ‘내가 해야만 한다’고 믿고 있는 일은 얼마나 같을까요?

함께 읽은 경전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1 「서품(序品) 제1」

부처님께서 기사굴산에 모인 대중 앞에서 ‘무량의’라는 이름의 대승경을 설하신 뒤, 『묘법연화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佛說此經已,結加趺坐,入於無量義處三昧,身心不動。

불설차경이, 결가부좌, 입어무량의처삼매, 신심부동.

자연스럽게 뜻을 풀면,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신 뒤 결가부좌하고 무량의처삼매에 들어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이후 경전에는 하늘에서 꽃이 내리고 세계가 진동하며, 법회에 모인 대중이 부처님을 바라보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말하는 무량의처삼매를 현대의 휴식·워라밸·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과 동일한 개념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법화경』이 현대인에게 “쉬어야 한다”고 직접 설하는 장면도 아닙니다.

이 글은 경전에 실제로 기록된 설법 뒤의 삼매와 ‘身心不動’이라는 장면을 등대 삼아, 오늘의 우리가 끊임없이 수행하고 있는 역할과 행동을 잠시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질문한 「지혜와 쉼」의 현대적 성찰입니다.

원전 확인: CBETA T0262 『妙法蓮華經』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KABC

경전과 창작 안내

이 글에 등장하는 마흔다섯 살 여성과 가족, 음식점, 산사에서의 대화는 오늘날 여러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자영업·돌봄·가사·가족 역할과 쉼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구성한 창작·재구성 서사입니다. 특정 실제 인물이나 실제 상담 사례를 재현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 글은 ‘엄마·아내·딸·며느리라면 특정 역할을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는 규범을 제시하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가족 구성과 역할 분담, 경제적 상황, 돌봄의 필요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경전에 직접 기록된 내용과 오늘의 삶을 연결한 「지혜와 쉼」의 현대적 성찰은 구분하여 작성했습니다.

지혜와 쉼 · 네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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